이번에는 전쟁 직후 세계 질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,
승자와 패자가 함께 만들어낸 불완전한 평화의 시작,
그리고 ‘제2의 전쟁’을 잉태하게 된 베르사유 체제의 탄생을 다루겠습니다.
[연재 제6편] 1919년 – 베르사유 조약과 전후 세계의 재편
총연재: 20편 / 주제: 1차 세계대전부터 냉전까지의 세계사 스토리
1. 파리 강화회의 – 세계의 운명을 정하다
“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할 것이다”
1919년 1월,
프랑스 파리에서 전승국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.
- 프랑스: 클레망소
- 영국: 로이드 조지
- 미국: 우드로 윌슨
- 이탈리아: 오를란도
이들은 승전국으로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설계하고자 했습니다.
그러나 각국의 이해는 달랐습니다.
국가 | 핵심 목표 |
---|---|
프랑스 | 독일에 최대한의 징벌적 조치 요구 |
영국 | 해상 패권 유지, 식민지 확대 |
미국 | 이상주의적 평화 질서 (윌슨의 14개 조항) |
이탈리아 | 런던조약 기반의 영토 확장 요구 |
승자들의 갈등
윌슨은 “국제연맹”을 통한 평화를 주장했지만,
유럽 국가들은 보복과 영토 이익을 우선시했습니다.
→ 회의는 곧 ‘전승국끼리의 협상’으로 전락합니다.
“승자는 정의였는가? 아니면, 단지 덜 지친 쪽이었을까.”
2. 베르사유 조약 – 패전국 독일에게 던져진 ‘굴욕의 평화’
조약 체결 (1919년 6월 28일)
정확히 5년 전,
사라예보에서 전쟁이 시작된 날과 같은 날,
독일은 강제로 조약에 서명하게 됩니다.
독일이 떠안은 주요 조항
- 전쟁 책임 전가: 제1조, 독일은 전쟁의 ‘전적인 책임’을 인정해야 함
- 배상금: 1,320억 금 마르크 (현대 가치 수천조 원)
- 군사력 제한: 육군 10만 명, 전차·공군·잠수함 금지
- 영토 상실: 알자스-로렌, 폴란드 회랑, 식민지 전면 박탈
“독일은 전쟁에서 졌지만,
조약으로 두 번 진 것이다.” – 독일인 민중 여론
독일 내부 반응
- “굴욕의 조약”이라 부르며 강력 반발
-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 신뢰 급락
- 극우세력 성장 기반 형성 (훗날 히틀러 등장 배경)
3. 새로운 국가들 – 제국의 해체, 민족국가의 등장
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의 붕괴
- 헝가리, 체코슬로바키아, 유고슬라비아 등 새로운 국가들 탄생
- 수십 개 민족과 언어가 섞였던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짐
오스만 제국의 분할
- 중동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로 분할
- 영국: 팔레스타인, 이라크
- 프랑스: 시리아, 레바논
- 아나톨리아 내에서는 터키 민족주의가 불붙기 시작
동유럽 지도 대변동
- 폴란드 독립 부활
- 발트 3국(에스토니아·라트비아·리투아니아) 독립
- 소련의 국경선도 이 시기 대규모 확정
4. 국제연맹 – 이상과 현실 사이
우드로 윌슨의 이상주의
- 전쟁을 끝내고, 미래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
국제연맹(League of Nations) 창설 제안
성립과 한계
- 1919년 출범
- 영국, 프랑스, 일본 등 주요국 참가
-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의회 반대로 불참
→ 무력한 국제기구로 전락
→ 주요 강대국들의 현실 정치에 휘둘림
5. 아시아와 식민지의 좌절 – 인종차별과 민족자결의 불일치
일본 – “인종 평등 조항” 요구 거절
- 일본은 국제연맹 헌장에 ‘인종 평등 조항’ 삽입 요구
→ 영국·미국 반대로 거절당함
→ 서구 중심주의 노출
중국 – 산둥반도 반환 요구 무시
- 독일이 점령했던 산둥반도를 일본이 차지함
- 중국은 ‘독립국 자격’ 무시당함
→ 베이징에서 5·4 운동 폭발 (1919년 5월 4일)
→ 중국 민족주의 운동 본격화
조선 – 3·1 운동의 씨앗
- 조선 지식인들,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 청원서 발송
- 윌슨의 '민족 자결주의'가 동양에는 적용되지 않음
→ 바로 다음 해, 전국적으로 3·1 독립운동 전개됨
“그들의 자결은 나라의 것이고, 우리의 자결은 허락을 구하란 말인가.”
1919년 총정리
주제 | 핵심 내용 |
---|---|
파리 강화회의 | 전승국 중심, 패전국은 배제 |
베르사유 조약 | 독일의 군사·경제·정치적 처벌, 민족주의 반발 촉발 |
제국 해체 | 오스만, 오스트리아-헝가리 붕괴 → 신생국가 등장 |
국제연맹 | 이상적 목표, 현실적 무력 |
아시아 반응 | 중국·조선 민족주의 고조, 일본의 실망과 방향 전환 |
마무리: 불완전한 평화, 다음 전쟁의 씨앗
1919년의 평화는
승리의 결과가 아니라
협상의 타협이었습니다.
- 독일은 분노했고,
- 식민지는 배제당했으며,
- 국제연맹은 힘이 없었고,
- 세계는 다시 불안을 안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.
“이 평화는, 다음 전쟁을 위한 휴전일 뿐이었다.”
– 프랑스 마셜 페르디낭 포슈
다음 편 예고
▶ [연재 제7편] 1920~1923년 – 전후의 혼란과 극단주의의 뿌리
전쟁은 끝났지만, 갈등은 시작되었다.
독일은 극단으로 치닫고, 러시아는 붉게 물들며,
세계는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.
📚 참고한 출처
- National WWI Museum – Treaty of Versailles
- Britannica – Paris Peace Conference
- Schoolshistory – Creation of New States
- Wikipedia – Shandong Problem
- Encyclopaedia Britannica – League of Nations